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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전,란' 속으로 [D:인터뷰]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1-01
박정민 "내년에는 휴식기 가지려 해"[데일리안 = 류지윤 기자] 박정민의 신작을 마주할 때마다 그의 연기적 재능에 감탄하고는 한다. 매번 캐릭터를 꼭꼭 씹어 체화해 '박정민표 얼굴'로 꺼내 보이고 만다. 한 번쯤 전작의 얼굴이 보일 법도 한데 박정민은 결코 똑같은 걸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전,란' 속 박정민의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은 충무로에서 왜 앞다퉈 그를 찾는지 단번에 납득시킨다.

넷플릭스 영화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선조(차승원 분)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 동안 감정의 울분을 토해내는 캐릭터를 맡은 적 없었기 때문일까. 공개 이후 박정민을 향해 '새롭다'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주변에서 새로운 모습을 더러 봐주셨어요. 제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지 의도한 건 아니었고 촘촘한 감정이나 상태들을 표현해야 하는 인물이다 보니, 종려가 어떤 마음일지 고민하다 보니 그런 얼굴이 나온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이번 종려 역할은 새로운 것이 많이 신나게 연기했습니다."

한순간에 노비가 된 천영만큼 종려의 서사도 기구하다. 고생 한 번 하지 않은 도련님에서 집안 노비들로 인해 가족들을 모두 잃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친구이자 그림자라고 여겼던 천영 때문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종려의 분노가 진해질 수록 박정민도 감정연기를 섬세하게 접근해야 했다.

"매 순간이 어려웠어요.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그냥 연기하면 되는데 커다란 사건들이 오다 보니 제 표현이 부족하면 영화 전체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증폭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있었어요. 보통 제가 연기할 때 처음이나 두 번째 테이크가 좋아서 그 때가 작품에 주로 담겼는데 이번에는 첫 테이크나 두 번째 테이크는 살짝 부족했고 테이크가 거듭될 수록 이 영화에 맞는 감정과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는 종려가 천영을 대하는 양가적인 감정에 집중했다. 표면적으로 양반과 노비의 노비의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으로 비추지만 박정민은 뼛속까지 양반인 종려에게 천영에게 준 마음은 호의를 베푼 것에서 기인했다고 해석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마음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천영에게 주었던 마음과 우정은 분명히 진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안에서 이 인물이 여지없이 양반이고 계급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야 제게 종려의 마음이 설명이 되더라고요. 정말 좋아서 천영의 이름을 지어줬는데 결국엔 그림자의 뜻이었잖아요. 여기에는 양가적인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바탕으로 관계 성립을 해나갔습니다."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았다. 이에 박정민은 '헤어질 결심', '일장춘몽'에 이어 '전,란'으로 박찬욱 감독과 세 번째 인연을 맺게 됐다.

"'시동', '변산' 두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두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에 놀랐어요.(웃음) 그런 영화 안보실 것 같잖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시동'과 '변산'을 좋아하는데 왜 '헤어질 결심' 홍산오 역할을 주셨지란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헤어질 결심' 때 나쁘지 않으셨는지 본인의 단편과 '전,란'까지 출연시켜주셨어요. 그런데 저의 어떤 면을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기회가 되면 물어볼게요. '헤어질 결심' 때도 그랬는데 '전,란'도 대본이 소설 같더라고요. 소설책으로 내도 충분히 성립될 수 있는 글이라고 느꼈죠. 배우들이 상상하며 연기하기 좋게 쓰여있어요. 그런 면에서 박찬욱 감독님 대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종려와 천영의 큰 감정의 진폭은 검술 액션에도 담겼다. 칼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종려의 감정이 허공에 쏟아지면서 공기마저 분위기를 바꾼다. 박정민은 뾰족한 칼끝에 종려의 분노와 울분을 담으려 노력했다.

"천영과 종려의 검술 실력 차이는 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전쟁 일어나기 전까지는 천영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7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옆 나라와 교류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을 거예요. 천영과 다시 만나 싸울 때는 천영과 대등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액션팀에 그런 면을 부탁드렸어요. 감독님은 다시 만나서 싸울 때 초반에는 종려가 이성적이고 차갑게 받아들이고 천영이 흥분해서 달려드는 액션합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 감정들이 액션을 통해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종려의 칼질에 담긴 건 울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강동원과의 호흡도 최고였다. 박정민은 강동원이 촬영할 때는 온 몸을 던지고 천영 자체가 되지만 촬영장 밖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를 편하게 해주려 하는 선배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저에게 갖고 있는 호감이 느껴져 편했어요. 진짜 어려운 선배면 제가 촬영이 먼저 끝나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그런데 강동원 선배 같은 경우에는 제가 촬영 끝나고 가도 날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어요. 상대방이 눈치를 보지 않게 하는 호의랄까요. 서로의 호감과 호의가 쌓여 좋았어요. 강동원 선배가 워낙 신나게 연기하시니까 현장 분위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어요."

'전,란'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 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영화계 뜨거운 감자가 된 바 있다. 독립예술영화들을 개막작으로 선정해오며 영화제의 정체성을 지켜왔던 부산국제영화제가 OTT 플랫폼 영화를 처음으로 선택하면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에 대해 박정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솔직히 별 생각 없었어요. 제가 나오지 않은 넷플릭스 영화가 부국제 개막작 선정됐다고 했어도 그럴 것 같아요. 갑론을박이 이뤄지는 걸 보고 '중요한 사안인가?'라는 걸 그제야 인지했어요. 사실 저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보다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가 훨씬 많아요. 시청자들 사이에서 팬데믹 이후 OTT가 스며든 와중에 OTT와 극장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두 매체를 즐기는 소비자로서 크게 상관 없어요. 극장 영화를 계속 해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넷플릭스 영화에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넷플릭스에서 좋은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개인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부국제 때 개막작으로 상영된 걸 보고 '영화관에서 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하다. 집에서 모니터로 보기 아깝다' 정도 였어요."

박정민의 출판사 무제는 설립된 이후로 적자를 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박정민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배우의 일이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 표현을 해낸다면 출판사 대표, 작가의 일은 이야기와 포장지를 스스로 만든다. 박정민에게 두 가지 일은 각자 다른 매력과 설렘을 가져다 준다.

"집에만 있으면 그렇게 돼요. 시간이 남으니까 '이런 거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은 거죠. 보통 새벽에 생각하니 자제력이 떨어져서 충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출판사는 딱히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를 믿고 글을 주신 분들이 있으니 책임감이 생겨서 이제 '하기 싫어'가 안되는 상황이에요. 마침 요즘 들어 이 일이 재밌어서 즐기며 해보려는 찰나인 것 같아요. 글만 썼을 땐 몰랐는데 책이라는 게 글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고가 들어가는 일이었어요. 작가가 준 원고가 좋을 때 이걸 어떻게든 소장하고 싶어서 서치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나와 일을 해준다고 하면 '김상만 감독님이 강동원 선배를 캐스팅 했을 때 이런 마음일까' 싶어요.(웃음)"

박정민은 왓챠 단편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의 '반장선거'를 연출하면서 감독의 영역도 경험했다. 연출가로서의 계획도 물었다.

"완전히 안 하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지금 당장은 없어요. 정말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예산적으로 부담이 적은 사이즈 안에서 해볼 수 있을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박정민은 '전,란' 이후 영화 '1승', '하얼빈', '얼굴', '휴민트',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인플루엔자'까지 차기작만 5편이다.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한 이후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충무로의 기대주'였던 그는 어느 덧 '충무로의 중심'이 됐다. 그는 내년 촬영해 놓은 작품들로 관객들은 여전히 바쁘게 만나겠지만 당분간 배우로서 연기는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겠다고 선언했다. 배우로서 고민을 멈추지 않는 박정민이기에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썼던 표정, 썼던 말투를 계속할 수 없잖아요. 하다 못해 제가 어떤 표정이 있는지 모르니까 살펴보고 싶어졌어요. 그 동안 너무 무시하고 살았던 것 같아 자진해서 브레이크를 걸어보려고 해요. 어떨까 궁금해요. 경험이 쌓이고 롤이 커지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좋은 선배님들 모시면서 배우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귀결이 되네요."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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