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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2]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천만영화’, <서울의 봄> 부산 제작기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25




1979년 겨울 이후 44년이 지난 2023년 겨울, 12·12 사태를 각색한 <서울의 봄>이 1312만명이란 압도적 흥행을 기록했다. 전두광(황정민)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일당과 합심하여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 한다. 그러자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이 전두광의 야욕에 맞선다. 영화 속 이야기는 전두광과 이태신 진영이 직접적으로 충돌한 서울권의 수도경비사령부, 육군본부, 행주대교 등에서 이뤄진다. 무거운 실화를 다룬 만큼 <서울의 봄>은 1979년 서울의 공기를 무척이나 생생하게 재현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울의 봄> 속 주요 장면들은 부산에서 촬영됐다. 전두광과 하나회가 자리 잡았던 30경비단 작전실, 이태신 장군이 진두지휘했던 수도경비사령부 상황실, 전두광과 이태신의 자택 등은 모두 부산의 어딘가에서 촬영됐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부산 곳곳의 공간과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2022년 3월부터 5월까지 무려 20회차의 프로덕션이 진행됐다.

<서울의 봄>과 부산의 연을 자세히 되짚기 위해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이용수 PD와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꾸린 제작기를 전한다. 더하여 영화의 핵심 스태프인 이모개 촬영감독, 이성환 조명감독, 장근영 미술감독, 정재훈 VFX 슈퍼바이저가 밝힌 촬영 비화도 함께 적었다. 부산의 봄을 <서울의 봄>으로 탈바꿈한 마술이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1970년대 공기가 살아 있는 부산



1979년의 공기를 되살리기 위해 <서울의 봄> 제작팀은 부산을 찾아야만 했다. “근현대사를 온전히 찍을 수 있는 곳은 이제 대한민국에 없다. 그렇지만 부산에는 아직 근현대 배경의 핵심으로 잡을 수 있는 거리, 담벼락, 건물, 조경”(이용수 PD) 등이 있기 때문이다. 12·12 사태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 이태신을 외딴곳에 묶어두려는 전두광의 계략에 의해 이태신은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 김준엽(김성균) 헌병감과 연희동 요정 골목을 찾는다. 이때 등장한 연희동 요정 골목은 부산 온천동에서 촬영됐다.



이용수 PD의 말처럼 “온천동과 대연동 일대는 시대극의 고급 주택단지로 많이 활용”되어온 단골 촬영지다. 연희동 요정 내부는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워 세트 촬영까지 고려하던 상황이었지만, 대연동에서 1970년대 유행했던 우드 톤의 색감이 집 내부까지 보존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연희동 요정 외부 거리 바닥의 글자를 VFX로 제거한 후, 전체적인 바닥의 톤 앤드 매너를 맞췄다.

<서울의 봄> 속 무교동 거리도 부산 중앙동에서 촬영됐다. “예전에 비해선 중앙동이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1970~80년대 거리를 촬영하기에 근간이 되는 건물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건물 하나, 기둥 하나를 활용”(이용수 PD) 할 수 있었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집, 기장과 대저동



“그 시대에 있을 법한, 그리고 그 인물이 살았을 법한 가장 현실적인 공간을 택했다.”(이용수 PD) 이태신과 전두광의 집은 인물들의 기질을 직접적으로 비유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태신의 자택은 기장군에 있는 이종만 가옥에서 촬영됐다. 이곳은 이태신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공간으로 구현됐다. 예를 들어 전두광 집의 난로는 그의 어두움을 비유하는 검은색이지만, 이태신 집의 난로는 따스한 분위기의 초록색이다. “창문에 성에를 그려넣거나 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을 추가”(정재훈 VFX 슈퍼바이저)하여 이태신과 아내가 자택에서 밥 먹는 장면은 무척이나 온화한 분위기로 연출됐다.



하나회 멤버들이 비밀리에 모였던 전두광의 자택은 부산 대저동에서 촬영됐다. 전두광이 하나회 군인들을 강압적으로 설득하고 일장 연설을 펼치며 반란을 작당했던 곳이다. 여기서 전두광은 갑자기 방의 불을 끄며 공간의 위화감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장면에 대해 이성환 조명감 독은 “전두광은 빛을 잘 이용하는 캐릭터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 할 때는 불을 그냥 꺼버린다. 자기가 빛 앞에 나와야 할 때와 숨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전두광과 반란군의 붉은색 탐욕



하나회 일당이 군의 연락망을 은밀히 감청하던 30 비단 정보실도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전두광 일당이 있는 작전실과 마찬가지로 붉은 톤의 조명을 사용해 기괴함을 키웠고, 일부러 공간감을 좁게 만들어 정보실이란 장소 특유의 비밀스러움과 갑갑함을 강조했다.



전두광과 이태신 사이의 대조는 그들의 자택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발견된다. 전두광과 반란군은 주로 30경비단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이태신과 진압군은 수도 경비사령부에서 주로 머무른다. 이 두 공간 모두가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전두광과 하나회가 사용했던 30경비단 작전실은 말 그대로 탐욕의 공간처럼 보여야만 했다. “야욕을 가진 악당들의 욕망을 강조하기 위해 어둡고 붉은빛을 썼다. 마치 바퀴벌레처럼 보이도록 그들의 얼굴을 기름지고 번들번들하게 표현했다.”(이성환 조명감독) 장근영 미술감독은 “공간을 붉은 우드 톤으로 만들어서 탐욕의 의미를 과감하게 부여”했고 “천장의 굵은 몰딩과 격자 패턴으로 그들의 깊은 욕망”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태신의 고립감, 정의감



이태신이 자리한 수도경비사령부 상황실은 전두광의 30경비단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차가운 빛을 써서 칙칙하고 외로운 느낌을 강조”(이성환 조명감독)한 동시에 “주로 따뜻한 우드 톤과 앰버 톤을 사용”(장근영 미술감독)했다.

미술, 촬영 방식의 세밀한 고민은 이태신의 상황과 감정에 관객이 최대한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태신은 반란군의 집단적인 공격과 다른 군인들의 반목으로 인한 외로운 감정에 처해야 했다. 이에 “상황실 공간을 유리 벽으로 나눠 이태신이 고립된 느낌”(장근영 미술감독)을 표현했다. 또한 이모개 촬영감독은 “전두광과 달리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상황을 강조하여 촬영함으로써 관객이 이태신 장군을 더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게 만들었다”라고 촬영 의도를 설명했다.



김성수 감독이 생각한 이태신



김성수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태신이란 캐릭터를 설명했다. “이태신은 이상적인 남성성의 총합인데 결국 현실 버전으로 말한다면 정우성이 곧 레퍼런스였다. 정우성 배우가 참고할 자료를 달라고 했을 때 정우성 본인이 했던 인터뷰를 보내줬다. 훌륭하고 근사한 인간. 그 태도는 한국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부산의 공간과 시민들이 만든 <서울의 봄>



부산 촬영엔 또 다른 이점들이 있었다. 이용수 PD는 “부산은 영화도시라는 인식으로 반겨주는 시민들이 많았다”라며 “촬영 당시 시민들의 협조가 순조로웠던 점이 최대 장점이었고, 제작진들도 덩달아 부산이란 도시를 애정하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더하여 “중앙동 거리 촬영도 상인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주말 통제가 가능”했음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역 인센티브가 있다 보니 좋은 도시에서 촬영하며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라며 부산 촬영의 현실적인 장점까지 언급했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 문제에 대해 이용수 PD는 “운송 네트워크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부산엔 촬영 관련 인프라가 잘 구비돼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당연히 장비 및 물자, 인력 수급에 비용이 발생하지만 지역 인센티브의 이점 덕에 세트 촬영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979년 서울의 시공간을 그리려는 <서울의 봄> 에게는 부산의 근현대적 공간과 넉넉한 촬영 여건, 시민들의 너른 협조까지 준비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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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산> 2023. VOL.45

‘부산 촬영해 보고서’ 재구성 및 “‘12·12 군사 반란은 쉽게 재현되지 않았다’ <서울의 봄> 제작기”(<씨네21> 1434호)

“과정을 ‘재미있게’ 전달하면 의미는 각자의 몫으로 피어난다, <서울의 봄>으로 천만 관객 돌파한 김성수 감독 인터뷰” (<씨네21> 1438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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