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내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 섬뜩한 명제에서 시작한 영화가 끊이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식의 죄를 벌할 수 있느냐"고. 어느 말이라고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시절의 아픔을 다룬 '서울의 봄' 제작사가 이번엔 가족의 폐부를 찌르는 영화, '보통의 가족'이다.
지난 달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 영화다. 네덜란드 국민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디너'를 원작 삼아 한국 영화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 분)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분) 형제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재규의 아내인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 분)과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분)까지.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은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리고 매사 완벽해 보였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너진다.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서 영화는 스크린 너머 관객들의 동공마저 요동치게 만든다. '내부자들'로 시작해 지난해 '서울의 봄'까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색채가 담긴 것일까. '보통의 가족'은 관객들로 하여금 '보통'과 '가족'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든다. 무엇이 보통이고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00이면 100 모두 저마다의 답을 갖고 있을 이야기에 '보통의 가족'은 정답이 아닌 질문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돈만 준다면 살인 사건도 우발성을 강조하는 변호사 재완은 자식을 제대로 훈육할 자격이 있을까.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다 스스로 가정의 ATM 같은 존재가 돼버린 그에게는 사람을 때려 죽게 만들고도 반성 않는 딸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자상한 소아과의사로 사회적 명예를 중시하던 재규가 정답인 것도 아니다. 폭행치사를 저지른 아들을 향해 처음엔 화를 내지만 그 화의 이유도 죄를 저질러서가 아닌, 학교폭력에는 맞으며 바보처럼 저항도 못하다가 힘없는 노숙인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다. 그리고 병원 기도실에서 울다 숨는 모습으로 참회를 했다 생각한다.
연경은 위선자의 전형이다. 치매에 걸린 시모를 집에서 모시고 있지만 짐스럽게 여기고 이를 표현하긴 민망해 한다. 피가 묻은 아들의 옷을 몰래 빨아 증거를 은닉하며 "부모가 자식을 믿어야지"라는 말로 합리화를 하고, 폭행 피해자가 무연고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내심 다행스럽고 동시에 경멸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바다 건너 해외 어느 곳의 불우한 아이의 모금 영상에는 눈물을 보이지만 아들의 폭행치사를 감출 수 있음에 냉정해지기도.
재완의 두 번째 부인인 지수는 친자식이 아닌 재완 전처의 딸이 저지른 범죄를 관망하는 듯한 태도로 주시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시각은 친자식을 대하는 재완, 재규, 연경보다는 한결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객관적이고, 동시에 "이래도 되나", "이대로도 괜찮나" 하는 보통의 상식적인 질문을 가장 먼저, 일관되게 던진다.
일련의 전혀 다른 입장과 성향을 가진 네 인물들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지만 일면 재완, 재규, 연경, 지수 네 사람의 모습은 마치 한 명의 부모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처럼 느껴진다. "내 자식이 사람을 죽였다"라는 상황이 실재라면 어느 누구도 무 자르듯 단호하게 일관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으리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 이에 '보통의 가족'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때는 재완처럼, 어느 때는 재규처럼, 또는 연경처럼, 반대로 지수처럼 복합적인 생각을 넘나들게 만든다. 이를 통해 어떤 한 인물이 아닌 상황으로 몰입하게 만들며 종국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복기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허진호 감독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그려진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멜로 영화로 호평받은 허진호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서스펜스 장르 작품인 바. 한 분야의 거장은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기기 마련인 걸까. 인물마다 각기 다른 선택과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 플레이는 멜로를 통해 감정 변화에 귀기울여온 허진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변주로 보인다.
정답이 없을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종국엔 영화를 통한 사고와 간접적 경험의 확장을 제시하는 '보통의 가족'. 작품 한 편의 이야기에만 머물기 아쉬웠던 극장 고물가 시대에 티켓값이 결코 아깞지 않을 문제작이다. 질문 자체 또한 100분 토론도 부족할 난장토론도 끊이지 않을 내용이기도. 영화의 잔상이 어떤 식으로든 스크린 밖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과몰입을 추구하는 모두에게 흥미로울 문제적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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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