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취재팀 제작…아카데미·퓰리처상 수상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사진.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창밖을 찍고 있는 카메라에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잡힌다. 함께 있던 군인들이 “2번 병원에 ‘Z’ 표식이 된 탱크가 다가가고 있다’”는 내용의 무전을 주고 받는다. ‘Z’ 표식은 러시아군을 가리킨다. 영상 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는 “우리가 붙잡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나직이 말한다.
AP통신 취재팀이 2022년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우크라이나 도시 마리우폴에 남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6일 국내 개봉한다.
영상 촬영과 내레이션을 맡은 체르노우와 사진 기자 에우게니이 말로레카, 영상 프로듀서 바실리사 스테파넨코를 비롯한 기자들은 민간인을 향한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쟁의 참상을 담았다.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비극적인 장면들을 목격하고 체르노우의 목소리로 설명을 듣는다.
다큐멘터리는 마리우폴 시민들에게 닥친 끔찍한 순간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학교 옆에서 축구를 하다가 미사일 공격으로 숨진 16세 소년 일리야, 폭격 현장에서 엄마 품에 안겨 병원으로 왔지만 결국 숨이 멎은 네살배기 에반겔라나의 모습을 촬영하던 체르노우는 “고통스러운 광경이지만 이것은 고통스러워야만 한다”며 연대와 공감을 촉구한다.
취재진은 스포츠센터로 사용되던 건물 지하 공간에 대피해 있던 여성과 어린 아이들의 인터뷰도 시도한다. 아기를 안고 있던 한 엄마는 “아직 얼마 살지도 않은 아기가 걱정될 뿐 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뭘 잘못한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분노를 삼켰다.
기자들은 촬영한 자료를 자동차 좌석 아래, 탐폰 등에 숨겨 목숨을 걸고 반출해 묻힐 뻔한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러시아가 마리우폴 2병원의 산부인과 병동을 폭격해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들것에 실려나가는 장면은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며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러시아는 뉴스가 보도되자 “서방 언론에 포섭된 우크라이나 활동가가 배우들을 사서 연기를 시킨 것”이라며 “조작된 영상”이라고 발뺌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현장을 뛰어다니던 취재진은 심리적 고통을 전하기도 한다. 체르노우는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울부짖는 시민들을 취재하다가 “계속 촬영을 해야할지, 멈추고 달래야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다친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전쟁 중 태어난 내 딸들을 생각한다. 그들도 곧 집을 떠나 대피해야 한다”며 “편집자와 위성 전화로 연락하며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제3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 다큐멘터리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상(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을 받는 등 전 세계 영화제 33관왕을 석권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유일하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존 오브 인터레스트’ ‘추락의 해부’ 등과 경쟁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당시 체르노우는 “이 영화를 만들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고, 점령하지 않은 세상과 맞바꾸고 싶다”는 소감을 밝혀 화제가 됐다.
기자들은 러시아의 가짜 뉴스를 반박하고 인도주의적 지원 경로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수상했다. 러닝타임 95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