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408] 영화 <아마존 활명수>▲ 영화 <아마존 활명수>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01.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 이를 위해 만들어진 문구 가운데 관객이 가장 쉽게 혹하게 되는 부분은 어디일까. 아마도 출연 배우나 감독의 이름값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배우를 두고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전작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거나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감독의 작품에는 적어도 이 정도의 성적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묘한 기대감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작품의 구성원이 참여했다는 정보 또한 하나의 소구점이 된다. 영화의 선전물 속에서는 특정 작품의 제작진이 함께했다고 기재된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두 작품 사이에 실제적인 연관성은 크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관객이 조금이라도 더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가느다란 연결고리라도 마련해 보고자 하는 시도다.
영화 <아마존 활명수>는 그래서 눈길을 더 끌었다. 연출을 맡은 김창주 감독은 이제 막 장편 영화에 도전하는 입장이지만, 각본을 집필한 배세영 작가가 <극한직업>(2019)에 참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주연을 맡은 류승룡, 진선규 배우가 같은 작품에서 호연을 보여준 바 있었다는 점, 이 작품 역시 장르적으로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다는 부분이 기대감을 더 높였다.
02.
영화 <아마존 활명수>는 과거 양궁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였던 진봉(류승룡 분)이 골드만 물산이라는 회사의 위태로운 과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근무 시간에 툭하면 졸고, 맡은 프로젝트는 온갖 변명으로 무산시키는 무능력한 그는 구조조정 명단에까지 올라있다. 인생의 낙이라고는 자신이 이룩한 과거의 영광 속에 파묻혀 그때를 기억하는 일. 비디오테이프 속에 녹화된 모 회사의 자양강장제 CF가 그의 대표적인 추억거리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아마존의 볼레도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정부로부터 금광 개발 사업을 위한 개발권만 얻어오면 구조조정 명단에서 제외해 주는 것은 물론 인세티브까지 확실히 챙겨주겠다는 회사의 제안이다. (볼레도르는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국가다) 문제는 이를 위해 최 이사(고경표 분)가 고안한 방법이다. 스포츠를 활용해 해당 국가의 위상을 높여주고 사업권을 얻어오자는 것. 물론 그 스포츠 종목은 우리나라가 가장 잘하는, 과거 진봉이 위상을 떨쳤던 양궁이다. 그는 그렇게 사주에도 없던 낯선 나라 아마존의 볼레도르로 향하게 된다. 회사의 직원으로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궁 감독이 되어 선수들을 훈련하기 위해.
▲ 영화 <아마존 활명수>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03.
"잠깐만요, 혹시 한국말 했어요?"
사실 이 작품은 영화적으로 그리 복잡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 않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코미디 작품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아마존으로 향한 진봉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모종의 과정을 통해 양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선수를 선발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문화적 차이에 의해 일어나는 또 다른 유머를 선보이고자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빵식(진선규 분)이라는 인물은 어눌한 한국어와 아마존 출신처럼 보이기 위한 외모로 웃음을 유발한다.
의도는 알 것 같다. 이 모든 시도가 원초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어떤 지점은 원주민이라는 대상에 대한 편견에 기대 인물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만 장르적 표현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실화에 기대고 있는 내용이라면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계천에서 물고기 사냥을 한다던가,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신은 연출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도 않고, 원주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한 세 인물은 그저 어디선가 본 듯한 세계 각국의 토착민들이 가진 행동을 모두 덧붙인 듯 보인다.
시대착오적이다. 최근에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다른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킬링 로맨스>(2023)가 있었고, <핸섬가이즈>(2024)나 <파일럿>(2024) 정도가 떠오른다. 이들 작품은 어땠나? 전통적인 코미디 연출에 기대고 있기는 하나 상황을 비틀거나(킬링 로맨스), 국내 시장에서 보기 드문 B급 호러 코미디를 정통으로 그려낸다거나(핸섬가이즈), 젠더적 활용에 대한 문제와 원작의 접근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한계는 남았으나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적인 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파일럿). 과연 이 작품에는 어떤 새로운 시도가 있었나.
04.
물론 이 작품 <아마존 활명수>에서도 관객들이 생각해 볼만한 지점은 있다. 금광 개발 사업을 위해 토착민인 타가우리 부족의 영역을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볼레도르 정부의 태도와 두 집단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하필 타가우리 부족의 터전에서 금광이 발견된다. 이 지점은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조금씩 다뤄지지만 타가우리 부족의 세 인물이 볼레도르를 대표하여 한국으로 떠나게 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난개발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아마존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개발 러시로 '지구의 허파'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극 중 볼레도르 정부가 타가우리 부족의 터전을 침범하고 서로 적대하게 되는 이유 역시 금광 개발이다.
외부의 시선과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사자의 관계와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적대적인 두 집단의 관계를 바라보는 진봉의 처음 태도는 가볍기만 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두 집단의 화해를 쉽게 시도한다. 제대로 알지 못할 때 가질 수 있는 태도다. 부족의 세 청년이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목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까지는 뜻을 함께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부족의 명운을 걸고 있는 그들만큼의 책임 의식을 진봉과 빵식이 갖기는 힘들다. 결과적으로 부족의 현실은 진봉의 제안에 따라 더 큰 주목을 받지만, 이건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 영화 <아마존 활명수>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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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소재의 특성을 전혀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자체만이 가지고 있는 박진감과 긴장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퀸스 갬빗>(2020)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대결하는 체스만으로도 그 에너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양궁이라는 종목을 다루는 방법은 오로지 캐스터와 해설의 중계와 반복되는 장면에 기대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다양하지 않다.
후반부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지점 역시 마찬가지다. 슬로우를 걸고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준다고 해서 관객의 감정을 붙잡고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와 비슷한 방법의 클라이맥스를 시도했던 몇몇 작품 역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퇴장했다. OTT를 비롯하여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세상이다. 이 정도 연출로는 관객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우리 영화 산업에 다양한 장르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코미디 장르 또한 지금은 많이 시도되지 않는 장르 가운데 하나다. 다만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과거 우리가 가졌던 사상과 시선 가운데는 이제 깨뜨려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코미디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한국 영화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엔 조금 아쉬웠으나, <아마존 활명수>의 다음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