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렛“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에게 이 상을 바친다.” 숀 베이커 감독은 최근 다섯편의 연출작에서 성 노동자를 다뤘고, 올해 칸영화제에서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어느덧 그의 영화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이 된 이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앞서 영화제 기자회견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성 노동은 직업이고, 생계이고, 커리어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성 노동자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신체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규제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숀 베이커의 영화가 아직 첨예하게 논쟁 중인 성 노동 합법화 문제를 직접 담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렛> <탠저린> 그리고 최근 <아노라>에 이르기까지 성매매의 순간을 직접 묘사하는 연출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종종 제기된다. 하지만 ‘성 노동자 한 우물’로 윤리의 회색 지대를 집요하게 파고든 숀 베이커가 미국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작가 감독으로서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하고 인정받은 것은 분명하다.
주류영화가 잘 다루지 않는 성 노동이라는 테마“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지만 아메리칸드림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주변부 사람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NPR>) 미국 청년의 일상을 담은 <포 레터 워즈>로 데뷔한 이후 그의 카메라는 늘 변두리의 사람들을 포착했다. <테이크 아웃>은 불법 밀수 빚을 갚아야 하는 중국 이민자의 24시간을 따라가고,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뉴욕 맨해튼 도매 패션 지구에서 모조품 호객을 하며 살던 가나 출신 불법 체류자에게 갑작스럽게 부양해야 할 18개월 아이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는다. 이후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본거지를 옮긴 숀 베이커는 16~20살 남성을 타깃으로 한 MTV 쇼를 작업하며 포르노 업계를 접하게 된다. “이들을 알아갈수록 포르노 배우들의 사생활이 우리처럼 평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인디와이어>) <스타렛>은 산페르난도밸리의 성인영화계를 배경으로 포르노 배우와 독거노인의 우정을 그린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숀 베이커는 “촬영하지 않는 날에도 캐릭터의 삶에 집중하며 그 세계에 뛰어들어야 공감의 눈을 뜰 수 있다”(<필름 코멘트>)는 것을 깨달았다. 요컨대 숀 베이커는 관객이 사회가 경시하는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안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사회의 포용을 논하는 정치적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숀 베이커에게 이를 가장 익숙하면서 탁월하게 다룰 수 있는 연결고리는, 그가 꾸준히 탐색해온 성 노동자들과 그들이 사는 공간인 것처럼 보인다. 성 노동은 주류영화가 잘 다루지 않아 차별화되고 첨예한 계급 문제를 드러내면서 윤리적 논쟁을 영원히 촉발시킬 수 있다.
탠저린숀 베이커의 영화는 상대와 친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년 이상의 제작 기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긴 리서치가 필수적이며 아예 기획과 캐스팅보다 선행하기도 한다. <탠저린>은 샌타모니카 일대에서 조사를 시작한 숀 베이커 감독과 크리스 버고치 공동 작가가 LGBT 센터에서 만난 인물들을 직접 주연배우로 캐스팅했다. 그렇게 배우와 캐릭터가 먼저 여정에 합류한 뒤 구체적인 공간과 사건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올랜도 지역을 1년간 여행하며 알게 된 홈리스들의 장기 투숙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됐다. 무니의 친구 스쿠티 역의 크리스토퍼 리베라는 실제 플로리다 모텔에 살고 있는 소년이었고, 무니의 친구 젠시 역의 발레리아 코토는 현지 마트에서, 무니의 엄마 핼리 역의 브리아 비나이테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캐스팅을 제안했다. 실제 프로덕션에 들어간 이후에도 가변적인 크루들과 즉흥적인 스케줄에 따라, 때때로 게릴라 촬영을 진행한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작업 방식과 닮았다. 실제로 그의 영화는 시네마베리테 스타일의 핸드헬드로 인물을 따라가다 익스트림롱숏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이 많다. 일반적인 미국영화의 3막 구조에서 벗어난 내러티브를 보여주거나, 3막의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구성(이를테면 <아노라>)을 취한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6개월 동안 휴식을 취한 뒤 거리를 두고 그간 찍은 영상을 다시 보며 순서대로 편집한다. 공교롭게도 숀 베이커가 영향을 받았노라 고백해온 이름은 켄 로치와 앨런 클라크, 마이크 리의 사회적 리얼리즘이다. 한편 숀 베이커는 항상 가난한 독립영화 제작자였다.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의 제작비와 배급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트콤 <그렉 더 버니>로 번 돈을 거의 쏟아부었고, <탠저린>은 예산 부족으로 하이엔드 카메라 촬영이 불가능해지자 아이폰으로 찍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대 때 마약중독으로 친구도 모두 잃고(뉴욕대학교 티시 예술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 중 토드 헤인스도 있다.-편집자)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는 섣불리 자신의 영화 속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 남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을 누렸다. 불법 이민자들에 비유하는 것조차 정말 무례한 일이다.”(<크리에이티브 인디펜던트>)
항간에 포스터 사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생계 유지를 위해 딸과 지내는 모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미혼모가 나오는 영화로 상상하기 어렵다. 애써 변명해보자면, 이는 숀 베이커가 빈곤과 결핍을 다루는 방식과 연결된다. “가난을 그저 비참하게 다루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캐릭터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쁨은 배경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아이들 내면에는 회복력과 경이로움, 상상력이 있다.”(<헉>) “소외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묘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아무리 힘든 시기에도 다양한 색을 품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NPR>) <탠저린>의 트랜스젠더 성 노동자들이 사는 거리는 화려한 색감을 공격적으로 뿜어내고, 숀 베이커는 리얼리즘 영화가 회색빛이라는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순다.
숀 베이커의 도발적 진화플로리다 프로젝트변두리의 아웃사이더, 특히 성 노동자, 매 작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숀 베이커의 영화는 점차 도발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레드 로켓>의 포르노 남자배우 마이키(사이먼 렉스)는 돈을 벌기 위해 도넛 가게 알바생인 17살 소녀 스트로베리와 연애를 즐기며 그에게 포르노 배우 데뷔를 제안한다(심지어 스트로베리는 이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결국 캐릭터의 비열함과 여성 착취를 까발리는 게 목적이라고 해도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소재다. 숀 베이커는 “지금 시대 극장에서는 이성애자 남성의 시각을 거부하고 있지만 마이키 캐릭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남성적 시선(Male Gaze)을 사용해야 했다”(<필름메이커 매거진>)며 불편함에 정면 승부한다. <아노라>는 오프닝부터 아노라(마이키 매디슨)를 포함한 스트리퍼 여성들의 몸을 대놓고 전시한다. <귀여운 여인>을 위시한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구성된 초반 40여분에는 섹스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비판받을 여지가 있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비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숀 베이커는 “내가 만드는 모든 영화에서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주제를 다룰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표현이 궤도를 벗어날 수 있다”(<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며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다.
뻔한 명제대로 모든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숀 베이커는 성 노동자가 일하는 순간을 굳이 지우는 대신 차라리 구설을 끌어안는다. 성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하고 자발적 성 노동자의 존재가 성립한다면 마치 그들의 노동이 잘못된 것처럼 이미지를 지우는 쪽이 오히려 위선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모든 영화는 노동영화”라면 숀 베이커는 “지하경제를 통해 노동의 측면을 탐구”(<일곱 번째 예술>)하기 위해 이 산업에 존재하는 행위와 엄연히 작동하는 남성적 시선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의 차기작 역시 성 노동자가 등장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인디영화로 작업할 예정이다. <아노라>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내년 오스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도 숀 베이커는 TV시리즈나 프랜차이즈 영화 연출에 관심이 없다. “특정 예산 수준을 뛰어넘으면 편집권을 보장받을 수 없고 이것은 내게 너무 중요한 문제다.”(<벌처>) 할리우드 유명 영화인들이 모이는 파티에 가는 것보다 미국 하위문화 커뮤니티를 즐기는 것이 여전히 훨씬 더 좋다는 숀 베이커는 진정한 아웃사이더이자 아웃사이더들의 예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