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롱레그스>2024년 7월 중순 <인사이드 아웃 2>, <슈퍼배드 4>, <콰이어트 플레이스 3> 등 속편들이 북미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꽉 잡고 있던 와중에 1천만 달러짜리 작은 영화 하나가 개봉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살인마 역할을 한 앤소니 퍼킨스의 아들 오즈 퍼킨스 감독의 신작 <롱레그스>로 '2020년대 <양들의 침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호평이 자자했다.
거기에 최근 몇 년간 질 좋은 작품들만 골라 출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작과 주연으로 참여해 중심을 잡아줬다. 결과는 소위 대박으로 북미에서만 7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담당했던 NEON의 역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포,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오컬트까지 아우르는 장르라는 점이 이채롭다.
연쇄 살인마와 FBI 신입 여성 요원의 조합이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키는 한편, 연쇄 살인의 그것이 공포 스릴러를 담당하고 FBI 요원의 추적이 범죄 미스터리를 담당한다. 거기에 사람의 심리를 뼛속 깊이 긁어대는 듯한 분위기는 캐릭터, 촬영, 미술, 음악, 조명 등이 따로 또 같이 만들어 냈다.
북미에선 평단과 흥행 양면에서 대박을 이룩했지만 우리나라에선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기독교 기반의 오컬트 공포 스릴러물이 뼛속 깊숙이 파고드는 근원적 공포와 서스펜스와 심리적 불안정감 등은 그들에게만 통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파묘>처럼 볼거리가 풍부하다면 만회가 되련만 <롱레그스>는 분위기가 7~8할을 차지하기에 요원하겠다.
연쇄살인마의 실체에 접근하는 신입 FBI 요원 ▲ 영화 <롱레그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신입 FBI 요원 리 하커는 30년 동안 계속된 미해결 연쇄 가족 살인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투입된다. 그녀는 투입되자마자 영적 직감을 발휘해 용의자를 색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선배 요원이 즉사하고 만다. 하지만 증거라곤 피해자의 생일이 14일이라는 점과 현장에 남은 '롱레그스'라는 서명뿐이다. 리는 연쇄살인마의 실체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드러난 사실은, 피해자 가족에게 공통적으로 14일이 생일인 9살 소녀가 포함돼 있었고 생일에서 6일을 전후로 살인이 일어났으며 아빠가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현장 그 어디에서도 살인마의 행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즉 살인마는 직접적으로 살인을 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살인을 하게끔 뭔가를 했다는 것이다.
한편 리는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듯한데 강박적으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한다. 그녀의 엄마도 범상치는 않아 보인다. 둘 사이에 혹은 가족 내에서 과거 무슨 일인가 있었지 않나 추측된다. 그런가 하면 리는 어느 누구도 파헤치지 못했던 암호를 풀며 연쇄 살인마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 감정이 없는 듯한 그녀를 충격에 빠트리고 송두리째 흔들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악마는 어디에나 있고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 영화 <롱레그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극 중에서 롱레그스는 자신을 가리켜 '어디에나 있는 아래층 사람'이라고 한다. 어디에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취약함을 파고드는 악마의 습성이 보이고, 아래층에 있다는 점에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파멸의 감정을 상징하는가 싶다. 지하실로 내려갈 때면 누구라도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궁극적인 공포심이 온몸을 덮칠 것이다.
롱레그스는 그 자체로 악마임과 동시에 악마가 파고들 만한 인간의 나약함 내지 취약함 등이기도 하다. 악마라는 형상은 홀로 존재할 수 있어도 악마라는 실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그 욕망이라고 하면 죄책감, 공허함, 걱정과 불안 등과 연관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감정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우주라고도 칭하는 한 인간이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힐 정도라면 오랜 시간 특정 환경에 노출돼야 할 텐데 한순간에 바꾼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때 역시 악마의 속삭임에 취약하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단단한 타인의 도움이 말이다.
스스로 나약해졌고 취약한 상태라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니 만큼 곁에서 물심양면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새로운 감정이 피어날 테고 악마가 파고들 여지가 줄어들 것이다.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인즉슨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가 일련의 본능적인 공포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캐릭터 확실한 연기가 확실하게 뒤를 받쳤다. 근래 보기 드문 수작 공포 영화임에 분명하다.
▲ 영화 <롱레그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