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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벤치에 두고 간 가방... '내 것'이라 주장하는 여자 셋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25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32] 영화 <주인들> 영화 <주인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이어지는 땅>(2022)은 우연히 주운 캠코더 속에 담긴 낯선 여성의 영상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경로를 통해 영상 속 여자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연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해석은 조희영 감독이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작품의 결 위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기억의 자리다. 그는 장편을 연출하기 이전에 만들었던 세 편의 단편 영화를 통해 꾸준히 이 지점을 지켜보고 포착해 왔다.

처음은 <기억 아래로의 기억>(2018)이다. 이 작품은 오래된 짐에서 발견한 물건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것은 아닌 것 같은 대상. 지금은 헤어진 연인의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친구의 것 같기도 한 물건. 의미가 부여된 물성이 간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대상에 대한 탐구와 또렷한 것 같으면서도 흐릿한 우리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 속에서 그려졌다. 일반적인 작품 속에서 기억의 발화가 시작되는 사건이나 플롯의 전개와는 분명 다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것은 유실된 기억, 부여된 의미를 잃어가는 물건임이 첫 작품부터 드러나고 있다.

다음 작품인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2020)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단일한 관계가 아닌, 하나의 대상을 가운데 둔 교차된 기억과 관계에 대한 탐구라는 점이 한발 더 나아간 지점. 영화는 학교 선후배이자 한 남자를 차례로 만난 옛 연인 두 사람이 만나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을 꺼낸다. 같은 대상에 대한 기억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고, 영화는 그사이를 오간다. 하나의 인물이 시점에 따라, 관계에 따라 얼마나 바뀌고 변할 수 있는지 문제와 선택적 기억에 대한 물음이 이 작품 속에 놓인다.

02.
이 영화 <주인들>(2022)은 그 연장선의 가장 마지막에 놓인 작품이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이야기였다. 앞서 설명했던 어떤 작품들보다 이 영화가 최소한의 정보만을 갖고 가장 모호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장편인 <이어지는 땅>을 제외하고 보자면, 조희영 감독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처럼도 보인다. 첫 작품에서는 상실된 기억이지만 누군가 떠올릴 수 있었고, 두 번째 단편에서는 대상이 되는 존재를 지워낸 다음, 이제 마지막으로 극의 많은 부분을 감춰내는 작업이다.

"버리고 나면 좀 괜찮아?"

영화는 민정(공민정 분)과 소령(김소령 분)의 대화로 시작된다(이 작품에서 인물의 이름은 설정돼 있지 않으나, 글 매체의 속성과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의 이름을 붙인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친구1과 친구2로 표기된다). 두 사람은 모두 특정되지 않는 누군가와 이별하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다. 대화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관계나 이별에 관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아니다. 헤어진 이후에 무엇이 남겨진 사람의 것이고, 또 무엇이 떠난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대처 법은 다르다. 민정은 적극적으로 버리는 쪽에, 소령은 버리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관계의 단절 이후에는 반드시 버려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과거의 우리에 속해 있었지만 양쪽 모두가 떠난 이후에 그 자리에 남겨지는 것들.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다면 이제 누구의 것이 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던진다. 끊어진 관계는 많은 것들의 거주지를 빼앗아 간다.

 영화 <주인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단순히 관계의 의미 속에서 던져진 것처럼 보이는 이 물음은 두 사람이 떠난 산책에서, 산책로의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가방 하나가 등장하며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점유를 이탈한 것처럼 보이는 가방에 민정이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가방이 예뻐 보이는 그녀는 한 바퀴 돌고 난 뒤에도 그대로라면 자신이 가지겠다고 선언하고 결과적으로 가방을 갖는다. 여기에는 물성을 가진 대상을 처음 가지게 되는 지점에 대한 물음이 있다. 각자의 뜻을 확인하고 조율할 수 있는 관계의 시작과 달리, 확언할 수 없는 대상을 처음 갖게 되는 일. 이후 등장하는 장면 하나를 더 설명한 뒤에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 회린(정회린 분)이 민정과 소령 사이로 개입하는 신이다.

이전까지의 장면에서 회린은 민정과 소령이 함께 등장하는 신 사이를 맴돌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녀가 대뜸 등장해서 민정이 주운 가방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민정은 그가 진짜 가방의 주인이라면 돌려줄 용의가 차고 넘치지만, 소령을 만난 장소가 가방이 놓여 있던 서울의 산책로가 아닌 강원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회린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뜻도 방법도 없어 보인다. 민정에게는 돌려줄 수도 돌려주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가 생긴 셈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처음 갖게 되는 일'의 의미는 여기에서 조금 더 또렷해진다. 물건은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고 민정과 회린은 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장하거나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분명 가방을 가진 사람이 있고, 가방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가방이 존재하지만 이 셋의 명확한 관계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조희영 감독이 그간 그려왔던 틀 속에 다시 배치해 보자. 관계와 기억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온 세 사람의 관계에는 단절되고 유지되는, 다시 시작되는 관계의 모든 측면이 그려지고 있고, 선명한 기억과 흐릿한 기억,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이 다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04.
"아까는 내가 그러고 싶었나 보지."

이 작품은 감독이 연출한 세 편의 단편이 가진 마지막 온점처럼 느껴진다. 시기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놓여있기 때문은 아니다. 작품 속 소재들이 가진 연결성이 그런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게끔 만든다. 민정과 소령이 강원도로 향하는 이유는 점집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싶거나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점을 보곤 한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막 끊어져 버린 애정했던 존재와의 관계 이후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주운 가방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는 민정의 대사는 가방과 주인의 관계에 삶과 삶 주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옮겨다 놓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회린과 연결된 에피소드 이후 결국 점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두 사람은 이제 어딘가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가지고자 한다. 두 사람 가운데 조금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민정은 가방의 처분도 회린을 대하는 모습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지향하고자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조희영 감독은 이 작품 이전의 두 단편 <기억 아래로의 기억>과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를 통해 기억과 관계성을 들여다보았다. 중요한 것은 두 작품 모두에서, 어쩌면 이번 영화 <주인들>의 초반부 장면들을 통해서도 그의 작품 속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관계성을 제한하고 얽매는 장치로 이용되어 왔다. 그것을 부수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히려 기억과 일치하는 관계가 아닌, 기억을 벗어난 관계 혹은 기억과는 다른 관계에 해당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놓여 있는 민정의 행동들, 회린이 진짜 주인인지 알 수 없는데도 가방을 돌려주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케이블카 티켓을 끊어주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가방을 돌려달라던 회린의 모습 또한 어쩌면 같을지 모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기억과 관계.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내일에 대한 가능성과 새로운 관계로 인한 회복이다.

 영화 <주인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5.
민정과 소령, 두 사람의 신으로 침입해 들어왔던 인물 하나는 이제 증발해 사라진다. 엔딩크레딧에서조차 '누군가'로 표기되던 회린이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 인물이 어떤 이름을 갖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감독이 던진 화두에 대한 답을 최소한으로라도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존재하던 두 인물의 변화된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존재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존재하는 민정과 소령에게는 마찬가지로 떠나는 존재와 남겨진 물건이 떠맡겨진다.

어떤 관계도 과거의 일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지워내거나 단면을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의 한 축이었던 스스로가 모든 과거의 시간과 사건을 완전히 잊어버리거나 지워낼 수 없어서다. 반대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는 만나게 될지 모른다. 어떤 물건의 주인이 된다는 것도, 형성된 관계의 어느 쪽이 되는 일도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잘 간직하고 보듬는 일뿐. 관계는 물론, 그곳에 매달린 기억마저도 머물 곳을 잃어버린 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버려진 캠코더 속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덧붙이는 글 |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일곱 번째 큐레이션인 '낯선 물체 따라가기'는 10월 16일부터 10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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