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가을과 함께 온 ‘국적 초월, 다채로운 영화’의 향연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유산을 받기 위한 불편한 동거 시작
깊은 사랑 느끼며 함께할 방법 찾아
레드 룸스
10대 소녀 3명 살해 생중계 혐의
범죄자 열성 팬과 유가족의 대립
동경 이야기
노부부 자식 보기 위해 동경 향해
바빠서 온전히 못 보고 결국 귀향쌀쌀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10월은 바야흐로 영화의 계절이다. 다양한 기대작이 극장가에 쏟아지는 시기, 국적을 초월하고 장르를 불문하는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태국의 가족 영화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이 전 세계 관객에 감동을 전한다. 익명성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는 ‘레드 룸스’는 인간성을 상실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일본 스튜디오 시대를 대표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도 재개봉해 흑백영화 특유의 짙은 여운을 남긴다.

◇왼쪽부터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레드 룸스, 동경 이야기.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게임 폐인으로 살던 손자 ‘엠’은 사촌형제가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집을 상속받자 잔머리를 굴려 할머니의 집에 들어간다. 할머니의 유산을 받기 위해 할머니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손자. 할머니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착한 손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오전 5시부터 죽 장사 돕기는 물론, 끝나지 않은 병원 대기 줄을 할머니 대신 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할머니와 점점 가까워지는 엠. 잔꾀로 시작된 가짜 효도였지만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손자 엠은 할머니와 오래 함께할 방법을 찾는다.

태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역대 태국 영화 사상 최대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 올가을 관객들에게 가족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미 제23회 뉴욕아시안영화제 관객상, 2024 캄보디아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은 세계적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전문가 평점) 100%와 팝콘 지수(관객 평점) 97%를 기록했다.

특히 영화는 태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팬층을 쌓은 태국 스타 배우 빌킨 푸티퐁의 신작으로 주목받는다. 철부지 손자로 열연을 펼치는 그와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할머니역으로 캐스팅된 우샤 세암쿰의 유쾌하고 뭉클한 열연은 가족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전체 관람가. 126분.

■레드 룸스=10대 소녀 3명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생중계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슈발리에’. 그리고 슈발리에의 재판을 매회 방청하는 모델 겸 해커 ‘켈리앤’. 심증만 있을 뿐, 물증 없는 재판이 길어지는 가운데 슈발리에를 추종하는 팬들과 희생자 가족이 대립한다. 죄에 혐오감을 느끼기는커녕 매혹되는 인물들. 존재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던 마지막 희생자 영상이 다크 웹에 등장하면서 인물들의 광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자를 추종하는 현상과 레드룸 소재를 결합한 파스칼 플란테 감독. 그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봉쇄된 시기, 다크 웹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로파일링 기술의 발전 속도를 넘는 다크 웹의 전파 속도를 쫓는 영화는 타인의 삶에서 온전히 독립될 수 없는 현실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15세 관람가. 118분.

■동경 이야기=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부부는 자식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번화한 동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자식들은 정작 부모에게 온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다. 의사인 장남은 바쁜 병원 일에,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은 북적이는 가게에 매여 있다. 며느리 노리코만이 유일하게 진심을 다해 노부부를 정성껏 돌본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이 눈에 밟힌 자식들은 노부부를 위해 고급 온천여행을 준비하지만 북적북적한 가족과의 저녁을 기대했던 두 사람에게는 따듯한 온천도 차갑게만 느껴진다. 결국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노부부.

흑백영화 속 두 노인의 뒷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가족단절의 시대와 매우 닮아 있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빛을 낸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을 만나본다. 전체관람가. 1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