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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장의 야욕, 동창생 엄마 향한 욕망... 기발한 인간 풀이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10
[넘버링 무비 395]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미세리코르디아>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알랭 기로디 감독의 작품들에는 전반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비틀림의 설정들이 놓여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틀림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서로 상응하지 못할 것 같은, 보통의 경우에는 기대되지 않는 장면이 연결되고 있는 점을 뜻한다. 해당 상황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굳이 이어 붙일 이유까지는 없기에 다른 작품에서는 표현될 것이라 조금도 예상하지 못할 플롯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된 <노바디즈 히어로>(2022)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클레르몽 페랑 지역에 가해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랑과 성적 욕망을 코미디로 다룬다. 물론 그 목적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붕괴시키던 갈등과 모순에 대한 풍자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호수의 이방인>(2013)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인 사건의 발생과 목격의 상황을 되려 욕망과 윤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치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신작 <미세리코르디아>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진다. 제레미라는 인물이 과거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남성성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비극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프랑스 남부의 산악지대와 어느 시골 마을의 좁은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따라 시작된다. 오래전 자신이 일했던 빵집, 그의 첫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장 피에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어떤 음악도 주어지지 않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작품 전체가 안고 있는 환기에 대한 첫 설정이나 다름없다. 이 작품의 타이틀인 '미세리코르디아', 자비가 어떤 자리로부터 시작될 것인가에 대한 암시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2.
장례식이 끝난 후, 장 피에르의 미망인 아내 마르틴의 환대와 제안으로 그녀의 집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하면서 감춰져 있던 마을 인물들의 욕망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빈센트는 오래전의 동창이자 아버지 가게의 직원이었던 제레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불순한 의도와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오랜 친구 월터는 그들 사이에서 모종의 질투심을 느낀다.

마을의 수도원장 필리프 사제에게도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야욕이 내재돼 있다. 그리스도의 교리에 위배되는 동성에 대한 이성적인 감정은 곧 제레미를 향하기 시작하고, 곧 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던 이들 모두의 속내는 아무런 의도도 없는 마르틴의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세상을 떠난 남편 장 피에르의 빵집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문제는 아들 빈센트가 아닌 옛 직원 제레미를 향했다는 것 정도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크게 몸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레미는 그를 깊은 산 어딘가에 깊이 파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갈등과 살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이 영화에서는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알랭 기로디 감독이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되는 인간의 내재된 욕망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보다 더 어둡고 음산한 갈구. 영화는 이제 살인을 저지른 제레미와 그 살인을 빌미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수도원장의 관계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한다.

03.
"영원히 침묵하며 사랑할 수 있어요."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이 작품이 동력으로 삼는 건 갑자기 사라진 빈센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문과 사실을 감추는 과정에서 제레미가 경험하는 아노미(무법, 무질서의 상태)적 심리 상태와 괴리다. 그런 제레미를 돕기 위해, 아니 교환적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돕는 수도원장의 말과 태도는 끊임없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사회적 규범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이내 곧 감독은 이 지점을 작품의 유일한 유희로 삼는다.

살인에 처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하는 제레미를 대하는 필리프 사제의 태도가 그렇다. 그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필리프 사제는 그것이 천성이 아니라면 잠재적 범죄자는 될 수 없기에 장기적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그에게 누구나 다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에게는 죽음이 필요하다는 말로 빈센트의 죽음을 정당화하려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 더 이상 어떤 논리적인 태도도 견지할 수 없을 때 결국 내뱉게 되는 속마음은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는 감정을 향한 호소뿐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미세리코르디아', 자비에는 역시 그가 견지해 왔던 일종의 비틀림이 존재한다.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라고도 볼 수 있는 사망 사고, 살인에 대한 용서가 어디까지 주어져야 하는지 파헤쳐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수도원장이 주장하는 자비에는 분명 어긋난 부분이 있으며, 알랭 기로디 감독 역시 두 사람의 베드신을 통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신의 대리에 해당하는 직업에 위치될 때부터 이미 이 모든 구조는 의도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4.
알랭 기로디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관객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통제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심인물의 동기를 설명하거나 드러내기 위한 노출이 극도로 자제돼 있고, 거의 대부분의 극중 인물은 그 통제에 맞춰 절제된 태도를 보인다. 제레미라는 인물이 개인의 문제를 획득해 가는 과정 역시 어떤 사건을 통해 획득되기보다 인물들 사이에서 충돌하는 갈등의 서사를 통해 구해지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까끌까끌하다. 겉으로 보기에 선뜻 다가서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영화를 접하고 있는 동안에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독의 자의적인 표현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을 마주하고 난 뒤에 런닝 타임 속에 두고 나온 이야기들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분명히 있다.

이 작품 역시 어두운 숲속 어딘가에 묻어두고 나온 용서와 이해의 경계에 대해 깊이 자문하게 된다. 조금은 장난스럽지만 기발한, 그의 또 하나의 철학적 필름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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