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우리는 울면서 태어나잖아요. 인생을 살다 보면 웃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건강한 웃음을 지향해요. 코미디 연기라는 게 조금은 과장스러울 때도 있는데 웃다가 뺨 맞는 것처럼 무안하지만 계속 도전해야죠. 진지한 상황에서도 아이러니하게 페이소스 있는 웃음을 준다던가, 저는 안 웃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관객은 포복절도하는 상황이 되는, 그런 경지에 이르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류승룡의 말대로 인간은 울면서 태어난다. 그 울음의 속성엔 고통과 슬픔이 있지만 희열도 있다. 태초의 울음은 인고와 환희의 대가인 것이다. 류승룡은 울며 태어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싶다는, 배우로서의 사명 같은 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보다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더 어렵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웃음에 인색하고 엄격하다. 코미디 영화의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건 '얼마나 웃기나 보자'라고 팔짱 끼고 보는 관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류승룡은 총 네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한 흥행 배우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 명)를 시작으로 2013년 '7번방의 선물'(1,281만 명), 2014년 '명량'(1,761만 명), 2019년 '극한직업'(1,626만 명)으로 천만 흥행을 달성했다. 이 중 '명량'과 '극한직업'은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2위에 올라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대학로 연극판에서 이름을 날렸던 류승룡은 희비극에 모두 능한 배우다. 특히 류승룡표 코미디는 극의 성격과 캐릭터에 따른 스펙트럼이 넓고 테크닉도 빼어나 언제 봐도 편안하게 스며들고 거부감이 없다.
지난 30일 개봉한 신작 '아마존 활명수'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구조조정 대상인 전 양궁 국가대표 진봉(류승룡)이 한국계 볼레도르인 통역사 빵식(진선규)과 신이 내린 활 솜씨의 아마존 전사 3인방을 만나 제대로 한 방 쏘는 코믹 활극.
이 영화의 시작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었다. 류승룡은 "'극한직업'을 썼던 배세영 작가가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쓴 시나리오예요. 여기에 '양궁의 나라에 양궁 영화가 없네?라는 호기심에서 양궁이라는 소재를 결합했고요. 진봉이 아마존 3인방에게 양궁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코미디가 발생하는데 결국 진봉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돼요. 코미디에서 시작해 휴먼드라마로 확장되는 이 영화의 개성이 제 마음에 와닿았어요"라고 소개했다.
'아마존 활명수'는 류승룡의 원맨쇼로 영화 전반부가 진행된다. 전직 양궁 선수였으나 지금은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위태로운 가장 진봉의 회사 생활이 짠하게 그려진다.
류승룡은 초반부의 원맨쇼에 대해 "스크린으로 보니 저도 그 모습이 처연하더라고요. 생계,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라고 생각했어요. 코미디 영화다 보니 그 상황이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그려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상황을 재밌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웃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류승룡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빠, 남편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뭔가를 해보려고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는, 그러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남다르죠"라고 말했다.
류승룡은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을 추구한다. 그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세얼간이'의 비루 사하스트라부떼를 언급하며 "웃음 속에 슬픔을 더한 페이소스를 선사하고 싶어요. 찰리 채플린의 블랙 코미디도 좋아하고요"라고 말했다.
'아마존 활명수'에서는 코미디 연기의 방법적 측면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울음도 여러 가지 울음이 있잖아요. 오열도 있고, 울상도 있고. 웃음도 그래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아마존 활명수'의 경우 상황은 진지한데 보는 사람을 웃음으로 환기하는 그런 코미디를 추구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이건 코미디 장르라고 생각하면서 관객에게 영화적 판타지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세 명의 외국인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와 사고방식도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정교한 연기 앙상블을 완성해야 했다.
"'극한직업' 때 호흡을 맞췄던 진선규 배우가 함께해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거든요. 이후 세 명의 외국인 배우가 합류했어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통역을 거치며 소통하다 보니 서로 초집중을 해야 했어요. 브라질에서 첫 촬영을 시작해 한국에서까지 치열하게, 재밌게 찍었습니다"
류승룡은 최근 몇 년 간 쉼 없이 연기활동을 해오고 있다. 코로나19로 드라마, 영화 산업이 어려울 때에도 '킹덤' 시리즈를 성공시켰고, '무빙'과 '닭강정'이라는 완성도 높고 개성 넘치는 시리즈물에서도 활약했다. 영화에서도 '장르만 로맨스', '인생은 아름다워', '정가네 목장', '아마존 활명수'까지 쉼 없는 활동을 이어왔다. 지치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일과 휴식의 균형이라고 답했다.
"과거 소처럼 일하다 과부하에 걸린 적 있어요. 그 이후 제게 맞는 휴식법을 알게 됐달까요. 공격적으로 제게 선물을 많이 줍니다. 가장 좋은 건 자연을 벗 삼아 걷는 거예요. 제주도의 올레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때는 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요. 맨발로 걸으며 몸 안에 독소들을 빼내는 거죠. 조만간 양세종 배우와 제주도에 가기로 했어요. 또 걸어야죠."
'인생은 아름다워' 이후 2년 만의 신작 영화인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류승룡은 담담하게 말했다.
"영화란 관객과 만나는 순간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들을 돌이켜 보면 (흥행이) 잘된 것도 이렇게 잘될지 몰랐고, 안된 것도 이렇게 안 될지 몰랐어요. 그만큼 흥행은 예상 불가입니다. 관객은 신이고요. 지금은 홍보 활동 등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겸허히 (결과를) 기다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