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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50일 앞두고 든 카메라... 어느 청춘의 파격적 기록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16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잠자리 구하기>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 이미지ⓒ 디오시네마
감독은 2014년 고3 시절부터 2021년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까지 8년 동안의 자신과 주변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 물론 매년 일기장 열람하듯 화면에 연대기적으로 전시하지는 않지만, 화면을 보고 있자면 저런 상황까지 용케 기록하고 보여줄 생각을 했구나 싶을 만큼 은근히 파격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시작은 대입수학능력시험을 50일 정도 앞둔 교실에서부터다. 감독과 친구들은 왁자지껄하게 희비가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고3 수험생이란 도매금으로 취급하기엔 인문계와 예체능계 지망이 다르고, 수시와 정시 비중에 따라 팔자가 바뀐다. 침울하고 적막만 휘감고 돌 것 같지만 의외로 요란법석 흥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게 후루룩 지나치는 수다 속에는 절망과 비탄, 불안과 초조감이 가득하다. 시험날짜가 다가올수록 그런 시끄러운 공포는 겉잡을 수 없이 가중된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공개됐다. 감독의 친구 중 누군가는 수능시험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감독은 몽땅 다 떨어졌다. 속된 말로 망한 것이다. 그런 운명의 갈림길은 친절하게 자막으로 화면 한가운데 떡하니 표기된다. 자학도 이런 자학이 없을 지경이다. 대한민국 70%(실업계나 등 30%는 수능을 치지 않으니)의 19살 또래들 인생이 마치 그 전후로 결착되는 느낌이다. 친구들은 겨울 우정여행을 떠나지만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축제'가 될 것임을 아직 알지 못한다.

감독은 용케 한 대학에 붙었지만, 부모님은 재수를 권한다. 폭망한 수능 성적만 아니면 평소 클래스로 재도전할 만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독과 일부 친구들의 재수 생활이 시작된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중력에 이끌리던 일상이 아니라 유배된 것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이제 그들과 감독은 다른 궤적을 향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 누군가는 아르바이트, 누군가는 연애를 시작했지만 정작 감독은 어정쩡한 어딘가에 파묻혀 있다.

대학에 입학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위기의 본질

다행히 1년 재수 후 사회 어딜 가서 소개해도 그리 꿀리지 않는 예술전문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제 까먹은 시간 보충하며 열심히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후로 감독은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징후를 드러내던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한 번 붕괴한 궤도는 회복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초라해진 감독은 대학 시절을 어릴 적 본인이 꿈꾸던 지망처럼, 타인을 돕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메우고자 시도한다.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때마침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회운동에도 참여한다. 그 광장에서 감독은 여전히 쓸쓸히 구석에 웅크리며 길을 찾지 못한다.

원래 감독을 잘 알던 이들이 아니라면, 그저 사회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평상시에도 잘 웃고 떠드는 영화 전공 대학생일 뿐이다. 물론 화면 속에서 감독은 자신이 종종 주변 사람들과 종종 충돌하며 대판 싸우곤 한다며 고백한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지만 이제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친구들은 감독에게 큰 힘이 되어주진 못한다(이는 감독 역시 매한가지다). 그들은 각자의 궤도를 따라 외우주를 떠돌 뿐이다.

얼핏 화려해 보이는 대중의 바다에서 외로운 섬처럼 부유하던 감독은 그 빛의 바다를 벗어나자 겉잡지 못할 격랑에 휩싸인다. 이제 옛 친구들과도 소원해졌고, 부모님에게도 차마 전할 수 없다. 어릴 적 들었던 동급생의 죽음이 떠오른다. 당시엔 별 느낌 없었는데 유독 이제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하소연하던 친구의 사연이 소환된다. 감독은 마포대교로 향한다. 난간을 움켜쥔다. 이후 계속 홀린 듯 틈만 나면 마포대교를 찾는다. 영화는 그렇게 실존 위기에 처한 감독이 자신의 8년을 고백하는 영상 편지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참혹한 자신을 기꺼이 드러내다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 이미지ⓒ 디오시네마
'사적/셀프 다큐멘터리'라는 경향이 독립영화 내에 일군을 형성한 지 오래다. 본인의 자전적 경험담을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업은 과거 사회운동의 일원으로 복무하던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경향과 구분되며 21세기 독립 다큐멘터리 신진창작세대 사이에서 중심이 되어가는 중이다. <잠자리 구하기> 역시 그런 사적 다큐멘터리 일군으로 포함될 특징을 거의 모두 지닌 작업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동류로 묶이는 작업과 본 작품은 상당한 차별점을 지닌다. 이는 창작세대의 사회적 속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청년세대는 더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텍스트로 기록하는 것도 희귀해졌다. 그 공백을 사진과 동영상이 메운다. 온라인에 폭발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온갖 '스토리'와 '릴스', '쇼츠'가 바로 그 증거다. 영상으로 말하고 확인하며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에서 소위 '인스타 감성'을 제외하고 해석할 수 없다. 즉 타인과 일상적 교류나 대화가 드물어지고, 섬처럼 고립된 생활 세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별해서 보이고 싶은 것만 보이는 경향이 팽배한 것이다. 오죽하면 인스타 세상에선 모두가 행복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질 정도다.

자기과시와 자기연민은 멀리 떨어진 것 같지만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이 정해놓은 터무니없는 질서와 구분법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한다. 허깨비처럼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코드만 찾다 보니, 사람은 다른데 내용은 복제한 듯 똑같은 콘텐츠가 온라인에 넘쳐난다. 오싹할 정도다. 혹은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무조건 긍정과 위로를 원한다. 극한의 '편 가르기' 요구다.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초라해 보이기에, 그 실체를 위장하기 위한 갑옷을 칭칭 착용하거나, 혹은 자신을 보호해주길 청하며 상대방 입장 고려하지 않고 달려드는 식이다. 자기만의 확립된 인생관이나 원칙을 수립할 틈 없이 정해진 궤도로 개인을 끼워맞추길 요구하는 세상이 그런 현상을 증식한다.

그런 블랙홀의 압도적인 중력장에 휩쓸려가는 와중에도, 감독은 이건 아닌 것 같은 고뇌를 거듭한다. 영화 속에서 내비치듯 감독은 학창시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성적도 남들 부럽지 않은 편이었지만, 교내 문제에 대해 기록영화 작업을 하는 등 옳다고 생각하는 건 손해 감수하는 의기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그런 본인의 수고를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깨닫자 마치 컴퓨터가 다운된 것처럼 벽에 부딪힌다. 한 번 난관에 봉착하자 10대 후반의 당사자는 쉽게 이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감독의 경우 그 시간이 8년이나 걸린 셈이다.

영화 초반은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고3 입시지옥 안 겪은 이가 누가 있으랴 싶다. 그래서 감독과 친구들 푸념이 피식 웃음을 짓게 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점점 더 외로워지고, 심경을 토로할 상대가 사라지면서 조금씩 불길한 기운이 스며든다. 마포대교가 등장하자 저런 것까지 다 보여주는가 싶을 지경이다. 설령 사실이라도 굳이 남들에게 보여줄 생각이 용케 들었구나 하며, 오히려 감독의 선택을 말리고픈 기분이 절로 든다.

<잠자리 구하기>는 본인이 처했던 위기, 그리고 계속되는 질문과 그에 수반되는 부끄러울 흔적을 낱낱이 발가벗듯 공개하는 영화다. 그래서 여타의 브이로그 짜깁기·인스타 감성의 속류들과는 명확히 차별화된다. 그 용감한 고백은 관객이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다.

과거의 나를 망각하지 않는 용맹한 도전

 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 이미지ⓒ 디오시네마
처음엔 흔한 입시문제 비판 성장기로 영화를 보던 관객은 조금씩 두려운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극단적 폭력이나 공포가 전염되는 끔찍한 과거사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감독의 솔직한 고백이 관객 각자 감춰뒀거나 망각하고픈 기억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제목은 그런 면모 때문에 더 절묘하다. 대개 곤충의 변태는 애벌레에서 번데기, 성충으로 이어진다. 탈피 때마다 외모는 물론 형질도 다르다. 아름다운 나비 성충이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에서 누가 혐오스러운 다족류 애벌레를 떠올릴 수 있을까. 멋진 사슴벌레에게서 땅속을 헤집는 징그러운 유충을 상상할까. 환골탈태 과정을 거쳐 우아한 성체로 완성되는 과정은 흔히 고진감래 끝에 성공하는 인생에 비견된다.

감독은 굳이 본인을 빗대어 '잠자리'라 칭한다. 고교 시절 징그럽다 여겨 구하지 못한, 유리창에 막혀 부질없는 탈출 시도 끝에 죽은 잠자리를 회상하며 감독은 자신을 그 잠자리처럼 서술한다. 화면에는 반복해 물에 빠져 날개가 젖는 난국의 잠자리들이 떠오른다. 날개를 말릴 낙엽 하나만 있다면 충분히 생존할 수 있지만 대개 잠자리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감독은 비록 용케 살아남긴 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처를 품은 채 버티는 삶을 살아간다. 잠자리는 나비와 달리 아주 작지만, 성체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태어나 몸집만 커진다. 즉 불완전 변태다. 과거는 고스란히 현재로 계승된다. 중간에 번데기 상태를 거쳐 탈각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8년 지난 시점에서 인터뷰에 응하지만, 일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들 10대 마지막을 공개하는 게 내키지 않지만, 혼자 다시 보고픈 추억이라 말한다. 타인이 안다면 흠이 될 거라는 불안감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솔직함을 공개하는 게 약점 잡힌다고 여기는 '판옵티콘' 세상에서 살아간다. 서로를 감시하며 초조함에 쫓기는 CCTV로 채워진 세계다.

감독은 상처투성이 과거가 현재로 연속됨을 고백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이 여전히 암초투성이지만, 그래도 결착이 아닌 과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음을 선언한다. '시련을 딛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후일담이 아니라 여전히 위태롭지만 가볼 때까지 가보겠다는 감독의 영상 편지는 보고 나면 한참 먹먹하게 뇌리에 남는다. 감독은 반성장 영화를 표방하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다만 속류의 성공을 칭하지 않을 뿐이다.

 영화 <잠자리 구하기> 포스터ⓒ 디오시네마
[작품정보]

잠자리 구하기
Saving a Dragonfly
2022 한국 다큐멘터리
2024.10.16. 개봉 80분 12세 관람가
감독/촬영/편집 홍다예
출연 홍다예, 김윤지, 최민정, 강민지
배급 ㈜디오시네마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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