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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봤을 뿐인데, 그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0-02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싱글 에이트> 영화 <싱글 에이트> 스틸 이미지ⓒ 오드(AUD)
급할수록 돌아가라, 막막하면 초심을 떠올려보라 했다. 우리는 늘 이 간단한 법칙을 놓치고 만다. 이 영화는 잊어먹지 않고자 이를 악물고 간직했던 것처럼 법칙에 그저 충실하다. 그 충실함이 단지 추억팔이 회고를 넘어 어떤 감흥을 연쇄 반응으로 불러온다. <싱글 에이트>는 딱 거기에 우직할 정도로 충실한 영화다.

학창시절 마지막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1977년 개봉한 <스타워즈>는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일본에선 1년 후인 1978년 6월에 공개됐고, 역시나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열혈 팬 중 고3 남학생 '히로시'가 있다. 그는 단짝 친구 '요시오'와 함께 중학생 때 이미 특촬물을 제작한 경력자다. 이후로도 꾸준히 카메라를 들지만, 신작은 들어가지 못한 채 고교 시절이 막바지에 들어서는 중이다.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입시에 여념이 없지만, 가을 문화제는 놓칠 수 없다. 히로시의 반에서 문화제 때 학급 차원에서 무엇을 할지 회의가 열린다.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던 히로시는 영화 촬영을 제안하지만, 담임교사가 어떤 내용인지 묻자 말문이 막힌다. 그는 영화가 선사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에 매료됐을 뿐, 기본적인 서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업식 전까지 주제 보완을 해야만 영화를 찍을 수 있다.

히로시의 머릿속에는 오직 <스타워즈>의 첫 장면, 제국군의 거대한 우주전함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반란군 우주선을 쫓아가기 위해 웅장한 전고를 드러내는 이미지의 재현만 있었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으로 영화 프로젝트가 통과될 리 없다. 담임교사는 측은한 표정 반, 황망한 표정 반으로 제자의 우격다짐 도전에 조언해준다. 중학생 시절 첫 단편영화를 함께한 요시오 외에 새로운 동료도 생겼다. 알고 보니 그 역시 영화의 꿈을 꾸던 동급생 '사사키'다. 셋은 한데 머리를 모으고 백지에 가깝던 영화에 살을 붙여간다.

일단 SF 영화라는 기본 구상에 배우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줄거리부터 구성해야 한다. 히로시가 촬영한 8mm 필름을 현상하러 자주 들르는 바람에 친해진 사진관 직원은 영화과 대학생이기도 하다. 그의 조언과 고가의 최신 카메라 장비 기능 설명을 듣던 중 떠올린 발상으로 '타임리버스'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다. 배우는 영혼의 단짝이자 전작의 주인공 요시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하지만, 여자배우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이 뒤따른다. 누굴 대체 섭외해야 하는가. 물론 필름 사용경비만 지원되는 상황에서 배우는 학내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히로시는 자신과 요시오 단둘이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찬성하지 않나 두렵던 순간, 함께 손을 들어준 '나츠미'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츠미는 영화 제작과 경합하던 '유령의 집'이 싫었기에 추천한 것뿐이라며 거절 의사를 밝힌다. 그렇게 캐스팅은 난항을 겪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히로시는 나츠미 외엔 다른 대안을 떠올리지 못한다. 반드시 섭외하겠다는 열망을 담아 거듭 기회를 노리는 '타임리버스' 제작팀은 산적한 난제를 헤쳐가며 가을의 축제로 향한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이 태피스트리처럼

 영화 <싱글 에이트> 스틸 이미지ⓒ 오드(AUD)
처음에는 젊은 신예 감독이 자신의 학창시절 떠올리며 본인이 자신 있는 이야기를 용맹·과감하게 스크린에 옮긴 작업이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코나카 카즈야 감독은 1963년생. 환갑이 넘은 관록의 주인공으로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경력자다. 경력을 살피니 예전에 본 작품도 제법 된다. 그런 감독이 고교 청춘물의 변주에 늦깎이로 도전한 이유가 뭘까?

해답은 바로 제목에서 풀린다. <싱글 에이트>, 처음엔 아리송하지만 구석구석 찾아보니 '유레카!'라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고사처럼 단번에 감이 온다. 코나카 카즈야 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8mm 필름카메라로 습작 영화를 만들어 왔다. 당시 그가 용돈으로 마련할 수 있던 필름이 바로 후지에서 생산하던 '싱글 에이트' 8mm 필름이었다. 이 영화는 중견 감독이 자신의 시작, '나의 출발점'을 수줍게 고백하는 도전인 셈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중 이른바 '덕업일치'를 구현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막상 '프로'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다 보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게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절감하고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좌절하고 나면 첫사랑 추억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다. 감독은 그중에도 아주 잘 풀린 경우에 속하지만, 그 역시 위기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은 꿈을 품거나 품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초심'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목적이 영화의 뼈대이자 줄기를, 알파이자 오메가를 오롯이 구성한다.

그런 배경과 제작의도 탓에, <싱글 에이트>는 극중 극 형태로 삽입되는 '타임리버스' 제작과정과 완성작 상영까지 이르는 제작일지 형식을 취한다. 그것도 아주 모범적인 구성에 따라서 말이다. 줄거리 전개는 철저히 '프리 프로덕션'→'촬영 크랭크인&크랭크 업'→'포스트 프로덕션', 마침내 '상영'과 에필로그로 연속된다. 10여 분 단편영화, 그것도 SF 장르로 '타임리버스'가 정체성을 갖기에 아마추어 학생영화라 해도 기본요소는 차고 넘치게 묘사된다. 마치 청소년 영화 제작 교실 영상교재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① 제작진이 영화의 기본 얼개를 정하고 지원받기 위해 홍보한다.
② 제작비를 마련한다.
③ 현장답사 및 배우 캐스팅, 소품 마련, 각본 정비 등 사전작업
④ 시나리오가 세부적인 콘티로 완성된다.
⑤ 실제 현장 촬영 돌입 및 완료
⑥ 편집 및 보정, 특수효과와 후시녹음, 배경음악 삽입
⑦ 내부시사회, 홍보, 공개상영

이 전체 과정이 물 흐르듯 <싱글 에이트> 속에서 구현되는 것은 물론, DIY 정신의 구현으로 우주선과 외계 존재,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어떻게 해내는지 세밀하게 표현된다. 기본에 충실한 데다 흔히 학생 단편영화에서 구사하기 쉽잖은 장르 이해까지 더는 알찰 수 없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 히요시와 동료들이 경탄하던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어릴 적 SF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던 풍경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테다.

그런 상상은 영화 속에 삽입된 영화들의 흔적으로 확신에 도달한다. 히로시가 처음으로 찍은 공포 괴수영화 <발톱(CLAWS)>은 실제로 코나카 카즈야 감독이 중학생 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에 감화받아 도전한 필름을 재현한 것이고, 극의 중심축인 '타임리버스' 역시 감독의 고등학교 영화동아리 시절 제작한 1979년 작품 <TURN POINT 10:40>의 리메이크 형식을 취한다. '그들의 첫 번째 영화'는 다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슬램덩크>의 감동을 실사판으로 재현하는 또다른 마법

 영화 <싱글 에이트> 스틸 이미지ⓒ 오드(AUD)
그런 시시콜콜 배경을 듣고 있자면 괜히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하지만 그저 치기 가득한 청소년 시절 영화의 꿈만이 <싱글 에이트>의 주전공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일본 청춘물의 영원한 레퍼토리를 복기하고 변주한다. 그 정서는 바로 <슬램덩크>의 세계로 직결되는 순도를 자랑할 정도다.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의 '농' 자도 모르던 불량학생이지만, 우연히 마주친 이상형 소녀 채소연이 건넨 말, '농구 좋아하시나요?'에 '좋아합니다'라 얼떨결 거짓말을 하고 인생이 변한다.

그는 지금이 자신의 최전성기라 느끼며 마지막 승부 직전 채소연에게 첫 만남 당시 대사를 복기한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강백호에게 그 대사는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농구에 대한 감정인 동시에 동경하는 첫사랑을 향한 고백인 것이다. 그 수미쌍관의 이미지는 <싱글 에이트>에서 거의 오마주처럼 재현된다. 농구가 영화로 바뀔 뿐이다.

이런 이중목적의 조합은 그저 병렬이 아니라 무한한 감정의 폭발로 확장된다.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히로시는 그저 특수촬영이 빚어내는 초현실적 풍경, 일상의 답답한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찰나를 꿈꾸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던 히로시가 동료들을 만나고, 처음으로 자신이 책임지고 무엇인가 이뤄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이 밥보다 좋아하는 영화다.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인물이 시작과 끝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즉 '성장' 서사를 관객에게 어떻게 동의받을까가 핵심이란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런 각성은 '타임리버스' 안에서 고스란히 구현된다. 영화의 안과 밖이 일치하는 비전의 완성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촬영, 요시오는 '컷', '컷'을 연달아 외쳐도 들리지 않는 듯 배역과 상황에 몰입해 끝없이 해변을 걸어간다. 주인공의 변화를 배우가 체화하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저 <스타워즈>의 겉보기 멋진 장면 재현에 목매던 그들은 어느새 관객과의 소통, 타인과의 공감을 고민한다. 제작진 역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성장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 제작을 반대하던 악역 동급생도 친구가 되고 동료로 합류한다. 이상적인 풍경이다.

물론 '그 후 주인공은 성공한 영화인이 됐습니다' 같은 결말은 (다행히)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를 향한 사랑을 확인했고, 다음에는 걸작을 만들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관객은 영화에 환호하고 청춘의 시간은 비행기 구름처럼 뭉게뭉게 파란 가을 하늘에 반짝반짝 빛난다. 꿈과 사랑이 쌉싸름하게 교차한다.

그렇게 영화는 완성되고, 주인공들은 평생 그 추억 간직하고 살 테다. 1978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은 관객들 각자 품은 내밀한 기억을 소환하며 심장에 꽂힌다. 뻔하다고 생각될 구성과 일본영화 특유의 전형성이 없진 않지만, 어느새 영화 속 상황에 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마성'의 영화다. 영화를 꿈꾸는 이라면 반드시 봐야만 할, '피가 되고 살이 될' 작업이다.

 영화 <싱글 에이트> 포스터ⓒ 오드(AUD)
[작품정보]

싱글 에이트
Single 8
2023 일본 드라마
2024.10.09. 개봉 112분 전체관람가
감독 코나카 카즈야
출연 우에무라 유, 다카이시 아카리, 후카자와 노아, 구와야마 류타
수입/배급 오드(AUD)
공동배급 홀리가든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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