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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나(들)에게’, 소설가 정이현의 <비포> 시리즈 에세이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09-27


<비포> 삼부작 중에서 어떤 편을 가장 좋아하나요? 간혹 그런 질문을 받곤 했다. 대답하기 전에 늘 조금 망설여졌다. 셋 중 어느 하나를 고르는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파당할 것 같아서였다. <비포 선라이즈>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 ‘철이 덜 들었군’ 하는 시선과 함께 아직도 희미한 청춘의 한때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안쓰러운 중년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사실 그동안 이 시리즈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나의 선호도는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비포 미드나잇>순이‘었’다. 연대기 순서이기도 하다. 세 작품은 각각 제시와 셀린의 20대-30대-40대의 점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들과 동년배인 나의 생애주기도 함께 지나갔다. 그러니 나의 순위는 미학적 완성도에 근거했을 리 없다. 후속작으로 갈수록 나에게는 제시와 셀린의 인생이 복잡하고 피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만약 그들의 인연이 <비포 선라이즈>를 마지막으로, 즉 이십대 초반의 어느 하룻밤을 끝으로 정지되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했다. 적어도 <비포 미드나잇>의 날들보다는 덜 힘들고 덜 지치지 않았을까 짐작되었다. 인생의 무늬가 아직 단순하고 단조롭던 20대 초반, 아쉽게 헤어지고 나서 서로 먼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았다면 말이다.



얼마 전 비행기의 기내 영화 목록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발견했다. 클릭할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진, 긴 시간 동안 까맣게 잊은 채 살아온 옛 친구의 이름을 SNS에서 우연히 포착한 뒤 선뜻 팔로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영화를 휙 빠르게 넘겨보았다. 익숙한 배경의 장면들이 맥락이 뚝뚝 끊긴 채로 조각조각 이어졌다.

한때 많이 좋아했던 영화가 분명한데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이라는 것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관람한 날이 어언 30여년이 지났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따져 보니 정확히 28년 전이었다. 흔들거리는 열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뜬 것 같은데 이만큼의 세월이 지나 있다는 것에 거듭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제 속도대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빨리 감기를 하지 않는 한, 영화의 시간은 매우 정직하다. 20대 초반의 제시와 셀린은 내 기억보다 훨씬 어리고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핑-퐁-핑-퐁 가벼운 탁구공을 넘기는 것처럼 말이 끊이지 않았다. 땅에 닿지 않고 가붓가붓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 말과 말들은 그런데 왠지 대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려는 의도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머릿속에서 팝콘처럼 터지는 찰나의 생각들을 차례로 신나게 지저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곧 죽을 늙은 여자 같아. 지금 내 인생은 추억 같은 거지”라고 셀린이 말하면 제시는 “나는 늘 내가 아직 13살 소년이라 생각해. 어른이 되는 법도 모르는”이라고 받는다. 그들은 드디어 마음 놓고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대상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 지금 내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영화 중반 즈음, 여성 점술사가 손금을 봐주는 장면이 후속편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것도 이제까지 몰랐다. “당신은 여성의 힘에 관심이 많군요.” 그녀가 셀린에게 모험가이자 탐구자이며 미래에 여성의 강인함과 창의성을 가지게 될 거라고 말할 때 내 코끝이 찡해졌다. 1995년의 셀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2013년 미래의 그녀는 모험과 탐구에 대해 고민할 여력 없이, 정신없고 피로한 현실의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었다. 다시 <비포> 삼부작을 정주행하는 일은 어떤 타임슬립물을 보는 것보다 경이롭고 놀라운 일이었다.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의 내부에서 평화를 찾아야만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점술가의 조언은, 사려 깊은 신(神)이 나와 친구들의 미래에 닿도록 미리 보내둔 예약 메시지 같았다.

집에 돌아와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을 차례로 보았다. <비포 선셋>에서 셀린과 제시는 고해하듯 앞다퉈 고통과 불안에 대해 고백하며,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희생의 크기를 견주며 상대를 찌르는 언어들을 쏟아낸다. 보는 동안 웃음이 날 때도, 짜증이 날 때도, 화가 날 때도,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부분도 건너뛰거나 멈추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을 다 보았다. <비포 미드나잇>이 끝난 뒤에 셀린과 제시에게 또한 나에게 지난 세기의 그 예언을 상기시켜주고 싶어졌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별이면서 동시에 하찮은 우주먼지라는 사실을,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비포 선라이즈>를 보던 때의 나, <비포 선셋>을 보던 때의 나, <비포 미드나잇>을 보던 때의 나. 그 나(들)는 같지만 다 다른 존재다. 당시 나를 둘러싼 맥락들도 제각각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비포 미드나잇>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그들과 비슷한 생애주기를 힘겹게 건너가는 내 모습이 포개져 보여서 자꾸 눈을 감고 싶어졌던 것이다.

오랫동안 <비포> 삼부작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알려져왔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이번에 새삼 알게 됐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인생이라는 긴 길 위를 걸어가는 이야기, 혼자서도 걷고 함께도 걷는 이야기, 함께 걸을 땐 손을 잡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고 뜨겁게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 또 천천히 이해하려 노력하며 싱겁게 껴안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후속작들이 만들어진 덕분에 우리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삶의 여러 국면을 그들과 같이 겪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세대에 관한, 20여년에 걸친 이런 시리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50대의 제시와 셀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궁금하지만 억지로 상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했을까보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지 않게 했을까가 더 궁금하다는 정도이다. 그사이 나는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그것이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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