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7TV 3377TV

두부공장에 얽힌 집안 갈등 그린 이 영화... 놀랍고 성숙했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09-23
[한국영화기행5] 영화 <장손>과연 올해의 데뷔작이라고 말할만하다. 아직 3달 넘게 남겨둔 2024년에 앞으로 더 몇 작품의 수작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손>보다 더 훌륭한 데뷔작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부장적 관습을 따르는 가족의 모습을 사계절이라는 배경과 함께 그려낸 <장손>은 끝내 바뀌지 않는 모순된 전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견고한 연기와 정교한 연출이 만나서 눈부신 서사를 만들어 내었다. 종종 <장손>은 에드워드 양 감독이나 임권택 감독을 떠올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에드워드 양이 죽음의 그림자 속에 성장하는 가족, 제사와 죽음의 과정 속에서 어두운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던 임권택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거기에 실력파 중견배우들 사이에서 강렬한 눈빛으로 장손 역할을 해낸 강승호란 배우의 발견까지. 그렇기에 이 작품을 두고 올해의 데뷔작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앞에 앉은 장손 성진(강승호)ⓒ 인디스토리
두부라는 유산

영화는 장손 성진(강승호)이 가족의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할머니 말녀(손숙)를 비롯해 가족들은 성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사이 제사 음식이 만들어진다. 장손 성진이 집으로 돌아오자 말녀와 집안의 어르신인 승필(우상전)은 귀한 손님이 온 것처럼 반기고 더워도 틀지 않았던 에어컨까지 가동한다. 승필은 성진만을 데리고 산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승필은 성진에게 빨리 신붓감을 데리고 오라고 말하고 성진은 할아버지는 돈이 많냐고 되묻는다. 승필은 대답하는 대신 배가 아파 자리를 급하게 파하고 풀숲에서 일을 보기 시작한다. 승필과 성진의 이 짧은 대화는 후반부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장손을 귀하게 여기는 유교 전통 신념을 가지고 있는 조부모가 성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주 두부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들이 꽤나 사실적인데 밖에서 보면 공장의 규모는 크지 않다. 새벽부터 두부공장에서 두부를 만드는 이는 성진의 아버지 태근(오만석)이 아니라 어머니 수희(안민영)다. 수희와 성진의 매형 재호(강태우) 부자 등이 부지런히 일한다. 간혹 승필이 공장에 찾아오지만 공장 운영에도 성실하지 못하다.

결국 두부공장의 실질적인 운영은 말녀와 수희, 그리고 재호 등이다. 승필과 태근, 그리고 성진으로 이어지는 두부공장의 경영권 세습이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운동권 생활을 하다가 다리를 다친 태근이나 서울로 올라가 연기생활과 영화배우 등을 하지만 유명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성진은 솔직하게 대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다. 치매를 앓은 승필이 마지막 부분에서 성진에게 하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또한 속으로는 어려운 일을 자식과 장손에게 시키고 싶지 않다.

 두부공장을 지탱해 나가는 비혈연가족ⓒ 인디스토리
하지만 전통과 관습에 매여 있는 생각들은 변하기 쉽지 않다. 그것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검은 봉지 안에 든 두부다. 제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떠나는 손자 성진을 위해서 가져온 봉지를 승필은 전하지 못한다. 말녀는 그런 것도 까먹냐고 승필을 나무란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승필이 아닌 뇌출혈로 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다시 고향을 찾아왔던 성진이 일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타자 승필은 이번에는 잊지 않고 검은 봉지를 전한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두부가 아니라 말녀와 승필이 매달 모아 두었던 목돈이 든 통장이다. 통장을 보고 있는 성진은 창밖으로 스며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찌푸린다.

산소에서 자신에게 돈이 많냐고 물어봤던 성진의 대답에 말하지 않았던 승필, 어머니에게 매달 자신이 모아 놓았던 돈을 주었는데 어떻게 그 돈이 사라졌냐고 화를 내었던 고모 혜숙(차미경)의 말들이 그 검은 봉지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산을 남겨주려는 승필의 마음, 그것은 대가족의 전통과 제사로 대변되는 관습을 잇고 싶어 하는 윗세대의 마음과 그것이 두부건 돈이건 부담으로 다가오는 자식세대의 부담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함께 있다.

 산소로 올라가는 성진과 할아버지ⓒ 인디스토리
이 영화가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족의 제사와 장례 등을 통해 계절과 역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대를 잇는 과정의 갈등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성진의 부모나 조부모 또한 성진이 잘 되길 바라지 그에게 직접적으로 대를 잇는 것에 대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을 보여주면서 그 사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에 집중하지만 불필요한 장면은 최대한 배제시켰다. 오히려 제사가 시작되는 여름 장면부터 장례를 마치는 겨울 장면동안 수려한 계절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각자가 겪고 있는 가정사가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제사와 장례를 그린 영화 장손ⓒ 인디스토리
오히려 이 영화는 은연 중에 한국의 아픈 역사를 드러낸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승필, 민주화 투쟁을 지내온 아버지 태근, 그리고 결혼과 직업 등의 현 청년 시대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성진까지. 그 역사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각각의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 몇 마디로도 깊이 있게 역사를 고민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려한 겨울 풍광 뒤로 두부공장을 뒤로 한 채 걸어가는 승필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신은 <서편제>의 그것고 비교될만한 명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자식 세대가 가지고 가야할 두부라는 유산, 그곳에서 이제는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겪게 될 아픔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승필. 역사에 그늘에 갇혀 있는 대가족의 어두운 그림자가 모순을 지나 풍경의 길에 흩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THE END
383
로컬 재생 기록 클라우드 재생 기록
로그인 계정
발표
이 사이트는 영구적 인 도메인 이름 TV3377.CC 활성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고 TV3377.CC 에서 응모해 주시면 계속해서 최신 영화와 동영상을 더 많이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