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834] <무도실무관>(*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법 잘 지키고 사는 선량한 시민의 입장에서 범법자와 재소자의 인권을 굳이 생각해 줄 필요가 있느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 이래의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가 형벌로서 정의와 질서를 세운다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피부로 와닿는 기사를 수시로 접하는 이 시대에 죄짓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범률은 범죄를 저지르고 형벌을 받은 이가 다시 범죄를 일으키는 비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자 가운데 출소 3년 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오는 비율이 전체의 20%를 상회한다고 한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의 재범률은 그보다도 높아서 출소 뒤 같은 범죄, 또는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오는 비율이 연간 50%에 육박할 정도다. 이쯤이면 죄는 저지른 이들이 반복해 저지르는 게 아니냐고, 이들을 세금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부당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재범확률이 높은 범죄에 대한 대응으로 추적감시 등의 제도를 활발히 운용한다. 전자발찌같이 위치정보 등을 제공하는 전자장비를 상시 착용토록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인력을 마련한 것이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의 전력이 떨어지면 즉각 담당자가 연락을 취하고, 아예 방전되면 수배선상에 올리는 방식이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무도실무관의 현실 ▲ 무도실무관 스틸컷ⓒ 넷플릭스
이때 관리 대상자가 주거지에 상주하고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관리하는 게 보호관찰관의 업무다. 이중 살인, 강도, 강간, 미성년자 유괴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필요해 따라 새로운 직역이 생겨나니, 이름하여 무도실무관이다. 태권도, 검도, 유도 등 공인 3단 이상의 실력자 가운데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
3교대 근무에 지난해 기준 휴일과 야간근무수당을 포함하여 월 290만 원 정도를 버는 무도실무관은 정규직 공무원이 보장받는 위험수당이며 계호수당 등 각종 수당 또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된 근무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떠나는 이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눈에 드러나지 않는 치안 질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무도실무관>은 제목 그대로 무도실무관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다. 대중에게 얼마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파괴력 있는 액션영화로 부각해 그 관심을 제고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다분히 공익적인 설정임에도 대중영화로 가치를 갖기 위하여 액션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감독 김주환은 앞서 <청년경찰>, 또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을 연출했던 이로, 한국사회 밑바닥 현실과 치안이 맞닿는 부분에 오래 관심을 두어온 작가이기도 하다. 그간 닦아온 액션 연출의 솜씨와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오랫동안 외면되어온 이야기를 결합한 <무도실무관>은 과연 그와 어울리는 작품이라 말할 수가 있겠다.
아동 성 착취에 대응하는 청년 무도실무관 ▲ 무도실무관 스틸컷ⓒ 넷플릭스
영화는 무도에 잔뼈 굵은 청년 이정도(김우빈 분)가 보호관찰관 김선민(김성균 분)의 제안으로 무도실무관에 채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압도적인 체격과 타고난 승부욕, 잘 단련된 신체로 웬만한 위협은 무리 없이 물리치는 이정도다. 매일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다닐 뿐 뚜렷한 목적 없이 살던 그 앞에 우연히 범죄자와 격투를 벌이던 무도실무관이 나타나고, 그를 도운 결과로 특별채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로부터 이정도가 마주하는 세상은 이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전자발찌 대상자를 24시간 감시하는 과정에서 거듭 돌발행동을 하는 이들이 발생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제압해야 하는 상황도 수시로 터지는 것이다. 급기야 어느 날엔 칼까지 맞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만 함께 근무하는 보호관찰관 김선민에게 반해버린 이정도는 더는 물러설 수 없게 된다.
영화는 미성년자를 납치해 성 착취물을 찍는 전과자들을 이정도와 그 친구들이 제압하는 이야기다. 현실적인 무도실무관은 어디까지나 전자발찌를 비롯한 보호관찰 제도가 무리 없이 운용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지만, 그래서야 액션영화를 찍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크웹에 성 착취물을 올려 돈을 버는 조직과 그들이 실제 납치와 강간을 진행하도록 하는 악당들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전과자이기에 이정도가 그들과 거듭 부딪치다 문제를 파악하고 일망타진하기까지의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조두순 떠올리게 하는 악당 강기중 ▲ 무도실무관 스틸컷ⓒ 넷플릭스
이중 이정도와 가장 격렬하게 맞붙는 악당은 15명의 여아에게 몹쓸 짓을 하고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강기중(이현걸 분)이다. 이 거구의 사내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대단한 격투 능력을 자랑하는데, 웬만한 사내 한둘이 붙어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완력까지 갖췄다. 그 때문에 그 출소를 앞두고 보호관찰 인력을 대폭 확충하게 되고, 그를 이정도가 추앙하는 김선민이 맡게 된다.
다분히 조두순을 떠올리게 하는 강기중의 존재는 영화를 이끄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 출소 날 몰려든 군중들과 유튜버들은 실제 조두순의 출소 날과 얼마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관심은 잠시뿐이고, 이내 순찰하는 경찰과 전자발찌 하나만 남게 되니 주민들이 느끼는 위협은 점차 커져만 가는 것이다. 전과자를 연결하는 범죄 조직과 이들 악당의 존재는 반대편에 선 보호관찰관과 무도실무관과 대비돼 극명한 선악의 구도를 형성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전과자 모두가 갱생이 불가한 악당과 얼마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반면 이정도를 위시한 그 친구들은 실제 경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된다. 그 사이에서 보호관찰 제도는 의롭지만 열악한 것으로, 경찰은 무력하기만 한 조직으로 그려질 뿐이다.
한국의 높은 재범률과 무도실무관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떠올려보면 <무도실무관>이 그리는 이야기가 무리하다 단언할 수 없다. 악당들은 법을 피해 거듭 범죄를 저지르고, 선의를 갖고 분투하는 의로운 이들 없이는 그 범죄를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가 범죄자를 바라보는 시선 ▲ 무도실무관 포스터ⓒ 넷플릭스
그러나 나는 <무도실무관>이 취한 스탠스가 아쉽다. 그건 이 영화가 표방한 선의와 실제 존재하는 엄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에 대한 가혹하고 편한 관점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 탓이다.
영화는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를 갱생이 불가능할 만큼의 악당으로 그린다. 이들은 무예에 통달한 이정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만큼 강력한 존재들이다. 조직적으로 더 큰 범죄를 구상하는 동안 경찰과 법치는 제 역할을 못한다.
무도실무관과 보호관찰관, 실제 존재하는 법제도를 내세워 현실성을 부각한 영화다. 그렇기에 <무도실무관>은 여타 액션영화에 비해서도 더욱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선택은 범죄자를 악 그자체로 만들고, 그들이 미칠 수 있는 위협과 그에 따른 혐오를 부추기는 데 집중할 뿐이다. 그건 결코 바람직한 태도일 수 없다. 도리어 지양해야 마땅한 태도다.
그는 현실적 어려움에도 한국사회, 나아가 법치를 기본적인 사회체제의 구성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인류의 성취로부터 후퇴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혐오와 복수가 아닌 합리와 정의를 가치로 숭상하는 오늘의 법치주의가 서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사회의 가장 약하고, 못된 자에게까지 제도로써 대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류가 지난 시대보다 나아진 것이라고 나는 아직은 믿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